20120424 vivre sa vie

여기는 산 속이다. 말 그대로 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앞에는 계곡이 흐르고 굽이굽이 산 봉우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관능적인 곡선을 그리며 자리하고 있다. 2층옥상에서 내다보이는 광경은 정말이지 황홀하다. 엊그제 처음, 이곳에 올라와서 크게 속삭였다. 와우, 이 그림을 앞으로 매일 볼 수 있단 말이야? 그래, 이거면 됐어. 결국 나란 인간은 이곳까지 와서도 어떤 하나의 틈을 만들어 놓으려 한다. 숨을 쉬고 살아야 하니까 내게는 매우 중요한거다.
하여, 어제는 이곳 탁상에 앉아 면앙정가를 읽었다. 부러 찾아읽은건 아니다. 그건 좀 부끄럽다. 하필 계획표상 오늘, 이 우연과 만난 거다. 이곳을 놔두고 사방이 막힌 독서실 책상에서 이 작품을 읽는 건, 송순에 대한 예의도, 이 가야산자락에 대한 예의도, 미래의 내 학생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걸 봤는데. 그 이미지가 내 눈에 박혀있는데. 이미 느껴버린 내 몸에 대한 예의가아니지 않은가. 실은 작년에 설악산을 종주하며서 관동별곡을 읽어볼까 생각은 했었지만 유난떠는 거 같아서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런 축복같은 우연은 아무 거리낄 게 없다.
도시에서의 감각이란 게 있다. 아마도 보들레르 이후, 많은 문인들이 그 감각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작품을 써 왔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그들의 사고의 연상과정, 시간의 속도, 공간의 변화 등을 통해 거꾸로 우리의 감각을 확인할 수 있다. 도시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자연의 감각을 느끼고 살아본 적이 없다. 흔히 말하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서의 고향이 내게는 없다. 이곳에서 나는 새로운 감각을 몸에 익히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자 왠지 유배생활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귀를 열고, 다시 귀를 닫고, 눈을 뜨고, 들숨과 날숨. 그래, 이거면 됐다. 아니, 흘러넘칠라. 
뭐 결국엔 지금의 내 처지가 속세의 입신을 꿈꾸며 왕을 원망했던 그들과 뭐가 다르겠냐만, 최소한 나는 그들보다 좀 더 생기발랄한 어조로 유배생활에 충실한 채 잘 지낼 거다. 고마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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