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물음. 알렉스가 쓰는 글의 수취인은 누가 될까.
p a r a n o i d
p a r k
를 연필로 서걱서걱 적는 (구스반 산트의 파라노이드 파크가 아닌)알렉스의 파라노이드 파크 이야기는 알렉스 자신 혹은 관객들 혹은 알렉스를 좋아하는 그 여자친구에게 전달되는 멀티수취임을 알게 된다. 이 영화의 오프닝 5분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밀레니엄 맘보]의 오프닝이 떠올랐다. 비키는 10년 전 밀레니엄을 떠올리며 기록을 시작한다. 비키가 보내는 기록은 누구에게 도착할까. 비키의 10년 전 기억과 알렉스의 며칠 전 기억. 두 영화의 오프닝에서 고속촬영 배경에 흔들리던 테크노 음악. 기억을 불러내고 보여주는 방식.
[게리][엘리펀트][라스트데이즈]에서 그들의 뒷모습을 거의 그림자처럼 붙어 응시하였던 구스반 산트의 시선은 이제 알렉스라는 화자를 거쳐 표현된다. 어떤 기자는 [파라노이드 파크]를 보고 뒷모습을 가장 잘 찍는 감독으로 구스 반 산트를 가리켰지만, 그 표현은 [게리]로 시작된 소위 죽음의 3부작에 걸맞는 표현이지, 이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에선 알렉스의 뒷모습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알렉스를 쫓는 카메라(그러니까 알렉스의 뒷모습을 쫓는)가 아니라 알렉스의 기록을 쫓는 카메라(알렉스가 들려주는)의 시선에 주목해야 한다.
두번째 물음.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비디오 카메라로 찍었을 법한 조악한 화질의 스케이트보드 씬은 무엇일까. 한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파라노이드 파크>에는 35mm카메라로 찍힌 세계와 슈퍼8mm로 찍힌 두개의 세계가 있다. 35mm로 찍힌 세계가 정교하게 재조립되는 그 사이로 알렉스의 판타지 혹은 그의 소망이 삽입된다. 그러니까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길거리에서 즐겁게 연습하는 스케이트보더들의 아름다운 몸의 움직임들은 슈퍼8mm로 촬영됐다. 영화의 대부분 장면인 35mm 촬영은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이 했지만, 이 스케이트 보딩 장면들은 레인 캐시 리라는 전문 스케이트보드 촬영감독이 따로 맡아 찍었다. 구스 반 산트의 말을 요약하자면 “스케이트보더들에게 어울리는 카메라의 종류는 무겁고 비싼 35mm가 아니라 싸고 간편한 슈퍼8mm”라고 한다.
슈퍼 8mm로 찍힌 장면은 알렉스의 기억이 아니다. 이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살인을 저지르고 난 소년이 자신의 범행일지를 기록한 끔찍한 기억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 끔찍한 기억은 보는 관객에게 35mm의 시선으로 명징하게 전달된다. 관객은 몸뚱이가 잘린 시체를 목격하고, 알렉스의 포커페이스가 깨지는 순간을 목격한다. 알렉스는 이 끔찍한 기억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앨리엇 스미스의 노래와 함께 보이는 조악한 화질의 스케이트 보드 씬은 알렉스의 기억 너머에 있는 어떤 장면, 즉 상상의 기억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건 우리가 청춘에 대해 갖고 있는 어떤 상징적인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당신의 지난 청춘을 떠올려볼 때, 알렉스의 ‘스케이트보드’ 와 같은 것이 당신에게 있는가. 그것과 함께 청춘을 보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지금 임의대로 편집해서 하나의 영상을 홈비디오로 만들어보자. 바로 그것이, 이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에서 8mm 영상이 보여주는 알렉스의 우발적 살인 이전의 영상일 것이다. 그 끔찍한 기억, 혹은 사건은 영화 속에서 이 두 카메라의 시선이 섞이듯, 일상 속에서 문득 일어나게 된다.
[파라노이드 파크]에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두 장면이 있다.
살인 후의 샤워장면. 이 장면에서는 [라스트 데이즈]의 숲속 폭포 장면이 떠올랐다. 이 샤워 장면에서 들리는 사운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샤워기 물소리, 다른 하나는 숲속의 새소리. 구스반 산트는 이 장면에서 의도적으로 이 두 개의 사운드를 들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샤워기 물방울에 머리를 숙이는 알렉스의 모습은 점점 어두워지고 사운드는 점점 커진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의 역전. 바로 이때 알렉스는 몸을 틀고 벽 타일에 등을 댄다. 타일에 그려진 새. 그 울음의 환청. 세번 째 물음. 왜 블레이크와 알렉스는 숲속에 있는 새를 찾아 몸을 피했을까.
샤워기에 몸을 적시며 새소리를 듣기 전, 알렉스에게 포커페이스의 균열의 순간이 찾아온다. 살인의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세 개의 시공이 겹쳐진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알렉스의 죄책감, 알렉스가 형사와의 대면에서 안간힘으로 버티려는 포커페이스, 그리고 바로 과거의 그 끔찍한 순간. 즉 알렉스가 기억하고, 보여주고, 행한 이 세 장면을 동시에 장엄한 레퀴엠과 함께 우리가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다.
알렉스의 기억, 나레이션, 행동을 감각하며 궁금증을 품으며 따라간 것이 필자가 이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를 본 방식이다.
*네오이마주에 송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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